한국 조경사 (원시, 고대, 중세, 근세)

한국 조경사는 크게 고대(통일신라시대), 중세(고려시대), 근세(조선시대)로 나뉠 수 있다. 조경이란 경관을 조성하는 전문 분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초반에 조경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조경의 역사는 유를 만들었다는 대동사강의 기록으로 사실 고조선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한국 조경사의 원시와 고대, 중세, 근세에 이르러 각 시대 별로 변화하는 조경 양식과 특징들에 알아보도록 하겠다

한국 조경사 (원시, 고대, 중세, 근세)

원시시대 조경

고조선시대 대동사강의 기록을 시작으로 삼국시대에는 권력과 정신력의 강대함을 내세우며 힘을 과시하는 조경수법이 발달하였다. 고구려는 음양오행사상과 도교, 신선사상이 유행하였는데 대표적인 정원으로는 안학궁이 있다. 안학궁은 비정형식,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남궁 서쪽정원은 왕을 위함이고 북궁과 북문사이의 정원은 왕비를 위함이였다. 백제는 동성왕때 임류각이라는 경관 조망을 위한 높은 누각을 세웠고, 무왕 35년에 현재까지 충남 부여에 위치한 궁남지라는 못을 만들었다. 의자왕시기에는 물을 담아 연꽃을 즐겼다는 화강암 석조물 석연지가 탄생하였다. 신라조경의 최초기록은 동사강목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진흥왕때 목조 9층탑 황룡사가 만들어졌으며 시가지 가로망 형성에는 정전법을 사용하고 격자형으로 구획하였다

고대 조경 (통일신라 시대)

고대 조경은 화려하고 기교에 넘친 기법으로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불교에 의한 국민적 야망이 일치되며 봉건사회를 지향하는 시대성이 가미되어 있다.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조경으로는 임해전과 안압지가 있다. 안압지는 문무왕 14년에 설계되었으며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해안풍경을 묘사하였다. 곳곳에는 괴석 형태의 바닷돌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여 바닷가의 경관을 조성하고자 한 의도가 보인다. 안압지를 포함한 임해전 지원은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연회와 관상, 뱃놀이 등의 목적을 띈다

중세 조경 (고려 시대)

고려시대에는 귀족사회의 향락적 낭만에 의한 이궁과 별궁이 축조되었다. 전반적으로 중국 정원 역사 가운데 가장 화려했던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관상 위주의 정원으로 꾸며졌는데 궁궐 정원으로는 연경궁과 수창궁, 수덕궁 등이 있다. 신라때 도입되어 고려때 성행한 격구 (말을 타고 공을 다루는 전통 공놀이)를 위한 격구장도 정원의 일부로 추측되어진다. 문수원의 남지는 사찰정원으로 사다리꼴 장방형지를 이루며, 가장자리는 자연석으로 축조되었다. 이규보의 사륜정은 대표적인 민간정원으로 6명의 인원이 탈 수 있는 이동식 정자이다. 고려 시대의 조경은 화훼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시각적 쾌감 부여를 위한 관상위주의 정원이 조성되었다. 강한 대비와 호화, 사치스런 양식이 특징적이다

경주_유적지_사진

근세 조경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는 유교 정신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풍수의 성행으로 독특한 후원 양식이 탄생하였다. 또한 신선사상의 영향으로 삼신산과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 및 중도를 설치하였다. 근세에는 우리가 잘 아는 궁궐정원이 설계되었는데 바로 경복궁(정궁)과 창덕궁(이궁), 창경궁, 덕수궁이 그것이다.

경복궁의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으로 평지에 인공적으로 축산한 계단식 정원이다. 가장 큰 섬에 위치하며 정치적 행사를 행하던 경회루는 장방형 형태의 원지이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달리 후원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였다. 낮은 곳에 못을 파고, 높은 곳에는 정자를 세워 관상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였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동쪽으로 향해 지어졌으며 왕실 대비가 거주했던 내전인 통명전 지당은 장방형의 장대석을 쌓은 석지이다. 석지 위에는 아치 형태의 석교가 있으며 3개의 괴석과 앙련 받침대석이 있다. 덕수궁의 석조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1909년에 영국의 하딩에 의해 설계되었다. 석조전 앞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럽식 정원인 침상원이 있다

조경은 인간의 생활환경을 편리하고 안정되게 하며 즐겁고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조경은 또한 옥외 공간을 개발하고 창조함으로써 기능적이고 시각적인 미적 공간을 창출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에 경제개발에 따른 국토 훼손이 심각해지면서 경관의 보전과 관리의 필요성을 느껴 본격적인 조경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지만 그 뿌리는 앞서 서술한 대로 고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에 역사가 마냥 짧다고만 볼 수는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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