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원의 특징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인위적으로 암석과 수목을 배치하여 자연과 인공의 미를 겸비한 정원이라는 점이다. 경관의 조화보다는 대비에 중점을 두며 사실주의 보다는 상징적 축조가 주를 이루는 사의주에 입각해 있다. 중국 조경사도 오랫동안 꾸준히 변화를 거듭하여왔는데 그 변천사를 시대별로 알아보도록 하자
중국 조경사 (은시대-주시대-진한시대-위촉오시대-진시대-남북조시대-수시대-당시대-송시대-금시대-원시대-명시대-청시대)
은시대~주시대
은시대에는 제왕이나 귀족들이 먼 산림까지 사냥을 나갔다. 수렵원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동물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주시대에는 연못을 파고 그 흙으로 언덕을 쌓아 올려 왕후의 유락을 위한 곳으로 조성하였다. 낮에는 조망을, 밤에는 은성명월을 즐겼다. 공자가 편찬한 춘추좌씨전에 의하면 주의 혜왕이 신하의 포를 징발하여 유로 삼았다 한다 (원:과를 심는 곳, 포:채소를 심는 곳, 유: 금수를 키우는 곳)
진(秦),한시대~삼국시대(위,촉,오)
진시대 시황제가 통일로 수도 함양에 궁궐 조영 및 광대한 토목공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아방궁은 규모가 170km라는 엄청난 거리에 걸쳐서 조영되었다. 한시대에는 유교사상과 노장사상이 보급되고 신선사상이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을 때다. 서경잡기에 따르면 중정을 전돌로 포장하는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자연경관을 볼 때 정원을 꾸미고자하는 사상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민간정원인 원광한의 원림은 자연풍경 묘사 정원의 성격을 띤다. 중국 정원 중 가장 오래된 상림원은 원내에 70여 개의 이궁과 각지의 3,000여 종의 화목을 식재하였으며 동물을 사육하였다
곤명호는 동서의 호안에 견우직녀의 석조상을 앉혀 은하수를 비유하였고 연못속에는 길이 7m의 돌고래를 배치하였다. 때때로 선박 백 여척을 띄워서 수전 관람을 하기도 했다. 궁궐에 가까운 궁원인 태액지는 신선사상이 배경이 되었다. 못 속에 봉래, 영주, 방장 삼섬을 축조하였고 지반에 청동과 대리석으로 만든 조수와 용어의 조각을 배치하였다. 위나라와 오나라의 화림원은 못을 중심으로 하는 간단한 정원이 만들어졌다
진(晉)시대~남북조시대
진시대 왕희지는 원정에 곡수수법을 사용하였다. 시인 도연명은 한국인들의 원림생활에 영향을 미친 안빈낙도의 생활 철학을 내세웠다. 남북조시대에는 불교와 도교의 성행으로 건축과 정원에 영향을 미쳤다. 남조는 화림원이라는 궁원을 계승하였고 북조는 양현지의 낙양가람기로 당대의 정치와 지리, 풍속, 전설 등을 엿볼 수 있다
수시대~송시대
수시대에는 현인궁이 축조되었다. 당시대는 인위적 정원을 중시하고 중국 정원의 기본양식을 완성한 시기이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온건하고 고상하며 유정한 분위기를 풍긴다. 건물사이의 공간에는 화훼류를 식재하였다. 당시대 대표적 이궁은 온천궁이다. 당 태종이 건립하였지만 후에 현종이 화청궁으로 이름을 바꿔 양귀비와 환락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성궁은 수시대 인수궁터로서 태종이 다시 만든 산악지대 이궁이다. 대명궁은 태액지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정원이며 이덕유의 평천산장은 신선사상 및 자연궁경 묘사 정원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백낙천)는 정원축조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기도 하였다
송시대에는 당시대부터 시작한 정원 속에 산악이나 호해의 아름다운 국부경관을 조성하기 위해 태호석을 이용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 산수화 수법과 함께 중국인의 산수 애호 사상이 절정에 이르렀다. 태호석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돌로 화산의 영향을 받아 구멍이 나있다. 휘종이 세자를 얻기 위해 경도에 가산을 쌓아 사기를 막아야 된다는 도사의 말을 믿고 만든 가산인 만세산은 항주의 봉황산을 모방하였다. 만세산은 뒤에 간산이라 개칭하였으며 층층이 거암을 쌓아 만든 산악이다
금시대~원시대
금시대의 금원은 자금성의 후문에 위치해 있다. 태액지를 만들고 경화도를 쌓아 뒤에 원,명,청 3대 왕조의 궁원 구실을 하였다. 현재는 북해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였다. 원나라는 몽고인에 통치되었던 짧은 시대이기는 하지만 송나라 때부터 내려온 석가산수법이 곁들어진 전원이 도처에 축조되었다. 금시대에 만든 태액지내의 경화도 중앙에 자리잡은 산을 만수산이라 부르고 정상에 테베르식인 백색의 라마탑을 축조하였다.
명시대~청시대
명시대에는 문진향의 장물지(12권), 계성의 원야(3권), 육조형의 경(산거 생활을 수필로 적음), 이어의 한정우기 등의 정원 관계서적이 만들어졌다. 민간정원인 미만종의 작원은 물을 이용하여 우곡한 큰 못을 만들고 물가에 버드나무를 식재한 명대의 대표적인 명원이다. 또다른 민간정원인 졸정원은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남경에는 수목, 화훼만 곁들인 경관조성이 유행하였고 양주에는 산수와 경관이 두드러지고 기후가 온화하여 수목과 화훼의 종류가 많았다. 소주에는 섬세한 기교와 석가산 수법이 주로 쓰였으며 정원을 아취있고 유연한 느낌으로 꾸몄다
청시대에 만들어져 현존하는 자금성은 계절에 따라 화훼를 바꾸어 심었다. 자금성의 건륭화원은 건축과 석가산의 묘미가 최고로 발휘되었으며 자연미가 없다. 5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화원으로 석가산과 건축물로 이루어진 입체공간이다. 청시대의 원명원 이궁은 창춘원으로 부터 500~600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동양 최초의 서양식 정원의 시초가 되었다. 만수산 이궁의 이화원은 처음에는 사원을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불광각을 중심으로 한 수원이다. 소주의 4대 명원인 졸정원, 유원, 사자림, 창랑정은 섬세한 기교와 석가산 수법이 많이 쓰였으며 성내의 제한된 구역 내에 조성되었다. 양주의 명원은 조경기술과 건축기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양자강 북안에 위치하며 수경이 좋고 강남의 수려한 경관과 화방놀이 전통으로 많은 명원이 조성되었다